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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

[경전해설] 바라밀다(波羅蜜多)

by 원강유통 2024. 1. 11.

:: 바라밀다(波羅蜜多)

 

바라밀다는 범어로 ‘파라미타(Paramita)’라고 합니다. 그 뜻은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 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자세하게는 ‘바라’가 ‘저 언덕[피안]’, ‘밀다’가 ‘건넌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그 뜻을 풀이하면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요. 이를 앞의 ‘마하반야’와 함께 번역하면, ‘크나큰 지혜로 저 언덕(피안)으로 건너간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저 언덕’이란, 피안(彼岸)으로 정토(淨土), 불국토(佛國土),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언덕’이라 함은 차안(此岸)으로 우리가 사는 이곳 사바세계를 말하며 다른 말로 예토[穢土]라고도 부릅니다. 조금 다른 의미로 살펴본다면 이 언덕과 저 언덕이 모두 내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곳, 저 곳 하여 나누어 놓은듯하지만 실은 이 언덕은 어리석어 무명에 휩싸인 ‘거짓 나’이고, 저 언덕은 깨달아 밝아진 ‘참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라밀다의 뜻은 ‘이 사바세계에서 저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거짓 나의 삶에서 참나를 깨쳐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시말해 “‘나’ 중심의 삶[我執, 我相]에서 ‘나 없음’의 삶[無我, 眞我]을 깨쳐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예토’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말하는데 모든 것이 혼탁하고 오염되어 있는 탁한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우리는 육신[身]으로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청정하지 못한 음행을 하는 등의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입[口]으로는 온갖 거짓말과 이간질을 일삼고, 삿된 분별심에 빠져 진실치 못하여 꾸미는 말을 하며, 거친 욕설 등을 일삼고 살아갑니다. 또, 생각[意]으로는 탐욕에 빠져 오욕락을 즐기기 위하여 과다한 욕심을 부리고, 조그만 일에도 불끈 화를 내며, 어리석은 삿된 사량심으로 온갖 악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짓고, 탐진치(貪瞋痴) 삼독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염된 이 땅을 ‘사바세계’ 즉 예토라 하여 [반야심경]에서는 ‘이 언덕[차안(此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언덕[피안(彼岸)], 즉, 정토(淨土)란 어떤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정토란, 우리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청정하여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이상(理想) 세계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의 세계, 열반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 언덕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요? 바로 마하반야의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큰 지혜의 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배를 불가에서는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사십구재를 지낼 때, 오색 띠가 달린 작은 배를 들고 봉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배가 바로 반야용선, 즉, 큰 지혜로 부처님의 세계로 영가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배인 것입니다. 이 반야용선의 뱃머리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타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야할 부처님의 세계까지 길을 인도해 주시므로, ‘길을 인도하는 왕’이라는 의미의 ‘인로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반야용선은 수많은 무명중생을 모두 태워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대승(大乘), 즉, ‘큰 탈 것’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방편설법을 다시 정리해 보면, 육도윤회의 세계인 이 언덕이 있고, 부처님의 세계인 저 언덕이 있으며,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향하는 수행자의 세계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십법계(十法界)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들이 사는 인간계를 포함해 우리가 윤회하는 세계인 차안예토[차안-생사윤회의 경지]인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세계와[6], 피안정토[피안-해탈열반의 경지]의 세계인 부처님의 세계[1]가 있으며, 차안인 이 언덕에서 피안인 저 언덕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하고, 반야용선을 타고 가는 수행 과정에 있는 세계, 즉,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세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3] 여기에서 성문, 연각, 보살에 승(乘)을 붙인 이유는, 반야용선을 타고[乘] 간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성문이나 연각승은 소승의 수행방법이며, 보살승은 일체 중생을 함께 배에 태워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대승의 수행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이르는 방법, 파라미타, 바라밀다의 방법에도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바라밀다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공부하는 수행자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목적은 ‘바라밀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같다고 하겠습니다. 바라밀다를 향한 보리심의 횃불을 밝혀들고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바라밀다 공부를 시작합시다. 그 공부가 바로 반야심경의 공부입니다.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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