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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

[경전해설] 반야(般若)

by 원강유통 2024. 1. 11.

반야(般若)

 

 ‘반야(般若)’라는 말은 범어로 ‘프라즈냐(Prajna)’ 라고 하며, 팔리어로는 ‘판냐(panna)’라고 합니다. 반야는 바로 팔리어 ‘판냐’의 음역어로서, 마하와 같이 그 발음만 따서 옮긴 또 다른 예입니다. 이 또한 ‘마하’에서와 같이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야’ 또한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일 것입니다. 반야를 굳이 번역한다면 ‘지혜(智慧)’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최고의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범부중생으로서 어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이겠습니까? ‘지혜’와 비슷한 단어로, ‘지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계산하고, 암기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지식’이라 한다면, ‘지혜’는 이러한 범부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반야의 지혜는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분별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 오히려 버리고 비울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머리 굴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관조반야(觀照般若)’인데, 이것은 일체의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정견(正見)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제법(諸法)의 실상,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고정된 바 없이 비춰 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오직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아 현실 세계의 모습을 여실히 깨달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실상반야(實相般若)’로 이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 우주와 하나가 되어 버릴 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반야를 우리가 올바로 깨달아 바르게 비추어 보게 되면, 이것이 바로 관조반야(觀照般若)인 것입니다. 셋째는 ‘방편반야(方便般若)’로 이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이상의 실상반야와 관조반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경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반야는 아니지만, 반야지혜를 이끌어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방편이 되는 것이므로 반야라고 합니다.

 이상 삼종의 반야는 부처님의 지혜인 깨달음의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라고 일컫는 것은 진리의 당체(當體)인 실상반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해서, 실상반야를 체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계를 밟아가야 합니다. 우선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방편반야, 즉 문자반야입니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공부를 한 뒤에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 실천이 바로 관조반야입니다. 관조반야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편견,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는 실천 수행법입니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그 후 관조반야를 실천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의 실상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 비움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 현상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모습에 대한 ‘눈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야’의 성취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행복을 성취하는 길이고,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법상-